[P.S.]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에세이의 수난 시대에 태어난 에세이 — 포니포스트의 두 번째 P.S.
『도밍고』의 여정과 <에세이 대부흥회> 후기 — 포니포스트의 두 번째 P.S.
안녕하세요, 포니입니다.
지난 P.S. 글에서 얼떨결에 책을 만들고 판매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입고 제안을 시작하면서 맞이한 어려움들에 관해서 말이죠. 오늘은 그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과 작은 인사이트를 공유드려 보려해요.
마침내 손에 쥐어진 책은 마치 재혼해서 얻은 수양딸 같았습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본인은 (글만) 싸질러놓고 조기축구회에 나가 놀고 있는 남편 같다고 했지요. 작가는 글을 쓰면 업을 다한 것인데, 씻기고 빗기고 입혀서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제 몫이었거든요. 내가 낳은 자식은 아닌데, 정신 차려보니 자식같은 아이를 키우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뾰족한 기획 따위 없이 오로지 패기로 만들어진 에세이, 대 자기PR의 시대에 수줍음 많은 무명의 작가와 출판사. 입고 제안을 하다보니, 정말 우리가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지금은 시와 소설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에세이라는 것은 '잡문'으로 불렸습니다. 문학에 범주에 쉽사리 끼워주지 않는 잡스러운 글 말입니다. 누구나 쓸 수 있기에 일기 아니냐며 비하되는 전문성 없는 글이라는 초라한 인식 아래에서요.
서러웠습니다. 그리고 이 서러움을 공식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자리를 찾게 됐으니, 가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8월 19일에 열렸던 <에세이 대부흥회>입니다.
주최측은 출판사 이야기장수를 운영하고 계시는 이연실 편집자님과 이슬아 작가님이었어요. 이슬아 작가의 책뿐만 아니라 유명인의 에세이도 다수 작업하신 에세이계의 대모(?) 편집자님과 에세이라는 장르로 본인의 이름을 알린 이슬아 작가님의 조합이 참 든든하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그들이 외칩니다. '에세이 붐은 다시 온다'고.

그렇습니다. '다만 절판에서 구하옵소서' 이 구절이 가슴에 콱 들어 박혔습니다.
더 이상 찾는 이가 없어 세상에 내 보일 이유가 없다는 공식 선고, 절판.
이제는 유명인이 되신 이슬아 작가님마저 절판을 걱정한다니, 왠지 이 사람의 말이 위로가 됩니다.

'눈에 띄지 않으면 띠지가 아니다'
이 말은 이연실 편집자님이 쓰신 『에세이 만드는 법』의 목차이기도 합니다. 이 행사는 『에세이 만드는 법』 개정증보판의 홍보차 만들어진 자리였거든요.
이야기장수의 진취적인(?) 디자인을 보자면, 열화당의 디자인이 추구미라던 이슬아 작가님의 대립 구도를 여실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진 속 이슬아 작가님의 내려놓음이 보이시죠.
저 역시도 을유문화사, 열화당이 추구미인 자로서,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던 지점이었습니다. 표지 디자인을 설득하기 위해, 작가님과 영상통화로 긴 대화를 나누던 어떤 밤이 떠올랐지요.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띠지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독립출판에게 띠지는 배부른 소리 같았어요. 그러나 띠지를 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무지랭이 같은 실수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라도 걸쳐야 할 마당에 『도밍고』는 겁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띠지를 만들어야 할까요?
아쉬운 마음에 며칠 뒤, 가상의 띠지를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는 양자 입장에서 자기 점검도 해볼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작가의 글을 충분히 좋아하는가 - Y
비슷한 것에 열광하고 치를 떠는가 - Y(maybe?)
그의 기세에 압도 당하였는가 - Reverse(제가 압도 당하는 편입니다)
나와 함께여서 작가가 더 나아졌는가 - ?
『도밍고』는 작가만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인가 - Y


에세이계의 거목들도 말하는 에세이의 수난 시대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자로서 무릎을 탁 치는 부분이 시작됩니다.
앞서 언급했듯, 유난히도 오해가 많은 장르가 바로 에세이더군요. 실은, 저 또한 그런 이들 중 하나였음을 이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오해를 살 법한 책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게 이유겠지요. 소정의 예산만 있다면 누구든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지만, 지식이 아닌 본인의 경험과 생각이 글감이 되기에 진입장벽이 다른 장르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오해를 쉽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은 왜 에세이를 만들었냐'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글이 재밌어서요"

이슬아 작가님이 말씀하신 에세이 또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재구성되고 가공된 이야기라는 점은 직접 경험했으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지점이었습니다. 실은 에세이를 만들기 전, 그러니까 그저 독자일 때는 에세이에 담긴 글은 완벽하게 진실해야만 할 지어니, 필연적으로 자기고백적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도밍고』를 만들면서 작가는 일정 부분, 특히 감정적으로 과다한 대목들은 몇 번의 퇴고를 통해 과감하게 덜어냈으며, 작가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제가 수정을 감행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빠짐없이 오직 진실하기만 할 것이라는 추측 또한 에세이에 대한 오해가 되겠네요. 이것을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남편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썼던 글이 곧 책으로 나온다는 이슬아 작가님. 출간 예정인 책의 일부를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거의 한 소제목 정도를 낭독해주신 것 같았는데, 너무 재밌어서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행사가 마무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연신 웃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재밌는 이야기는 이유 없이 좋은 것이구나'
어떤 쓸모, 어떤 효용이 아닌 순수한 이야기가 제공하는 즐거움에 고마워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최근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언제였나 하면서요.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볼 수 있어서라고 빨간 안경 쓰시는 이동진 평론가님이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에세이는 어떨까요. 에세이의 수난 시대에 태어난 에세이 『도밍고』도 어떤 독자분께는 그런 경험을 드릴 수 있을까요?
다행히 『도밍고』가 조금씩 세상에 내보여지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훌훌 가벼운 몸으로 어디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요. 수양딸을 세상으로 등 떠밀어 내보내며, 자식 가진 부모의 심정을 어렴풋이 느껴봅니다.
마지막으로, <에세이 대부흥회>에서 이슬아 작가님이 추천해주신 에세이 두 권을 소개하며 이번 포니포스트는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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